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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적이 좋으면 수단이 조금 잘못되어도 괜찮을 것일까?
우리는 흔히 목적이 먼저 존재하고, 그에 따른 수단이 있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래서 목적이 좋으면 수단은 조금 잘못되어도 괜찮다는 사고방식을 하는 이가 적지 않다. 최근 화제를 일으키고 있는 황우석 교수의 논문 조작 사건도 이런 잘못된 사고방식의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불치병 환자를 치유하는 궁극적인 목적은 좋았지만, 수단에 있어 그 목적을 이루는 방법이 잘못된 것이 밝혀진 지금 득보다 실이 더 많은 상황이다. 과연 잘못된 수단을 동반한 좋은 목적이 존재할 수 있을까?
목적은 언제나 수단이라는 조건을 동시에 수반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명심해야 한다.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는 적당한 수단이 꼭 필요하고, 결국 수단이 없는 곳에 목적이 세워 질 수 없다. 현실 속에 실질적으로 존재하여 실현 가능한 수단을 발견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우리는 목표라는 추상적인 개념을 세울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수단이 곧 목적이 될 수 있으며, 목적이 나중에는 더 큰 목적을 이루는 하나의 수단이 될 수도 있다. 이런 목적과 수단의 불가피한 필요충분조건의 관계를 이해하면, 잘못된 수단을 동반한 목적은 결코 좋은 목적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수단의 중요성은 과학이란 학문의 검증 과정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이때 과학은 자연, 사회와 관련된 모든 지식을 통틀어 체계적으로 발전시킨 학문이라 할 수 있다. 과학이 가진 특성에는 체계성이란 것이 있는데 이것은 곧 실험이나 관찰 혹은 타당한 근거에 의해 설명될 수 있을 때에만 특정한 법칙 또는 원리가 과학적 사실이라고 인정받을 수 있는 것이다. 이런 과학적 세계의 특성 상, 구체적이고 정확한 수단 없이는 어떠한 목적도 성취되기 어렵다.
또한 학문의 연구 과정에 있어서 어떤 문제를 인식하면 가설이라는 일종의 목적을 세우고, 그 가설의 타당성을 검정하기 위해 탐구 방법, 즉, 수단을 결정하게 된다. 탐구 방법에는 조사를 하는 방법, 사례를 연구하는 방법 등 다양한 수단이 있겠지만, 자연 과학에서는 주로 실험을 통해 가설을 검정하고 가설의 수정과 끊임없는 반복적 실험으로 과학적 진리에 도달하게 된다. 이 때 잘못된 수단으로 목적에 도달하는 것은 과학적 탐구 방법의 취지와 성격에 맞지 않으며, 그것을 바탕으로 한 연구 결과를 과학적 사실이라고 보기도 힘들다. 황우석 교수의 연구 과정에 있었던 "조작"은 과학이란 학문에 있어서 잘못된 수단이 분명하고, 이것은 좋은 목적이라는 명분아래 해명될 수 없다. 이렇게 잘못된 수단을 동반한 목적은 한 개인의 범위 내에서는 성취된 것인지는 몰라도 사회, 국가, 더 나아가 세계의 학술계에서 인증받기는 어려운 것이다.
그러나 황우석 교수의 이런 수단적 오류는 대한민국 사회가 목표와 수단의 상호관계를 이해하지 못한 데서도 비롯되었다. 대중매체를 통한 언론의 전문성 없는 무분별한 줄기세포 연구 목적의 과장과 그에 치우친 보도로 국민들은 그에 따른 수단에 대한 전문적이고 객관적인 사실을 무시한 채 어떠한 불치병 환자라도 치유할 것이라는 연구의 장기적이고 궁극적 목적에만 큰 관심을 두고, 황우석 교수를 영웅인 듯 지지해왔다. 하지만 그 수단과 그에 따른 결과물이 잘못된 것으로 밝혀지면서 국민들의 기대는 하루아침에 실망과 원망으로 바뀌고 말았다. 우리 국민이 줄기 세포 연구의 목적과 수단을 동시에 이해하고 그에 맞게 황우석 교수의 연구를 좀 더 현실적으로 지지해주었다면 과연 오늘과 같은 파문이 일어났을까?
요컨대 수단은 목적을 구성하는 요소로서, 그리고 목표는 여러 수단이 모인 요소로서, 잘못된 수단으로 좋은 목적을 이루기란 실로 불가능하다.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을 가리지 않는다.' 라는 사고방식에서 볼 수 있는 목적은 처음부터 수단을 무시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우리가 올바른 수단이 없는 곳에 진정한 목적이 설 수 없다는 사실을 자각하고 그에 맞게 21세기의 한국 과학자들의 연구를 지지해 줄 수 있을 때 비로소 한국의 이공계 기피 현상도 사라지고 한국 과학기술의 미래도 밝아질 듯하다. 좋은 성과를 올려야만 연구비를 받을 수 있는 현대 과학자의 처지를 이해하고 ORI(Office of Research Integrity: 연구정직관리국)를 설치하여, 공정하고 정직하게 모든 이가 자유롭게 경쟁하며 연구에 매진할 수 있게만 한다면, 제2의 황우석 파문을 우리 가슴 속 깊은 교훈으로 간직한 채 한국 과학 위상을 더욱 드높일 수 있는 좋은 기반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굳게 믿는다.